우린 숨 쉬고, 마시고, 먹는다. 숨 쉬는 데엔 도구가 필요 없다. 그냥 코만으로 족하다.
그러나 먹고 마시는 데엔 입만 갖곤 안 된다. 물론 처음엔 손바닥을 오그려 컵을 만들고 손가락을 모아 숟가락, 젓가락을 만들었으리라. 하지만 인류는 차츰 우아해질 필요가 생겼다. 돌을, 청동을, 쇠와 은을 캐서 숟가락을 만들고 급기야 스테인리스라는 물질을 발견했다. 그러느라 1만 년이 넘게 걸렸다. 숟가락은 세계와 나를 잇는 도구다. 숟가락 아니면 나는 세계를 섭취할 수 없다.
세계는 물과 바람과 흙과 불로 이루어져 있고 나 역시 세계의 일부이니 주성분이 똑같이 물과 바람과 흙과 불이다. 생명이란 그것들의 끊임없는 움직임 아니랴. 그 흐름을 담당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바로 숟가락이다. 숟가락질은 내가 맨 처음 배운 생존의 기술이었다. 숨쉬기와 뒤집기와 걸음마야 절로 터득되는 것이었지만 숟가락질은 의도된 학습 과정이 필요한 문명이었다. 엄마가 내게 맨 처음 쥐여 준 아기 숟가락은 놋쇠 재질이었다. 그 작은 숟가락으로 전력을 다해 밥을 퍼서 입안으로 나르던 나는 곧 성년이 되고 장년이 되었다. 내 첫 번째 숟가락질 성공에 박수를 짝짝 쳐주던 엄마는 오래전에 고인이 되셨다.
여전히 나는 하루 세 번씩 숟가락질을 한다. 그간 숟가락은 숱하게 바뀌었다. 바탕에 복(福)자가 새겨진 알루미늄, 그리고 스테인리스에서 은 혹은 나무까지! 한데 그간 숟가락이란 돌올한 존재에 대해 찬탄할 줄도 감사할 줄도 몰랐다. 봄바람과 가을 햇살과 개구리가 뛰어들다 뜨거워서 뱃구레가 허옇게 뒤집어지는 여름 논물이 힘 모아 키우는 것이 나락이다. 그리고 그 낟알을 벗긴 것이 쌀이다. 쌀 한 톨 속에는 180일 동안 집약된 우주의 지수화풍이 옹글게 응축돼 있다.
그걸 내 입으로 나르는 도구에 무관심하다고? 큰일 날 소리다! 숟가락에 감사하고 찬탄할 수 있어야 생명의 핵심에 닿을 수 있다. 내 입에 들락거리기에 딱 알맞은 크기와 모양으로 진화한 이놈, 새삼 숟가락을 꽉 잡는다. 유한한 나를 무한한 우주와 이어주는 이 자그맣고 놀라운 놈! 김서령 님 ㅣ 《김서령의 家》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