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교수가 되고 나서 가장 좋았던 점은?” 질문자의 기대에 따라 답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
나에게도 영악한 구석이 있다.
질문하는 사람의 눈에서 정성을 다하는 연구자의 모습을 포착하면,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연구할 수 있어서 좋다.”라고 답한다.
열정적인 교육자를 기대하는 이에게는 교육의 기쁨을 강조하고,
안정성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답을 한다.
위의 답변들은 결코 거짓이 아닌 진실이다. 물론 진실의 모든 면은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편하게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바로는 교수에게 적용되는 엄격한 드레스 코드는 없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복장에 관한 한 나름의 자유를 누린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업체인 페이스북은 최근 가장 '핫' 한 기업이다.
그런데 이 엄청난 기업이 공개를 앞두고 있다. 이를 알리기 위한 투자 설명회에 창업자가 참석하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런데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의 복장이 말썽이 되었다.
삼엄한 보안 조치가 내려진 초특급 호텔의 투자 설명회장에 주커버그는 후드 티와 청바지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나타났다. 투자 설명회는 말 그대로 투자를 유치하는 자리다.
따라서 투자를 할 사람들의 마음과 믿음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주커버그의 자유분방한 복장이 윌스트리트의 점잖은 신사들의 심기를 거스른 모양이다.
그들의 비난의 논지는 이렇다. 자리에 필요한 예의도 갖추지 못하는 사람에게, 고객을 존중하지 못하는
창업자에게 어떻게 거액을 투자할 수 있겠는가. 유학하는 중에 나는 잠시 동안 한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다.
당시에 회사의 주위 분들에게 얼마나 많은 폐를 끼쳤는지는 너무 부끄러워 차마 말할 수 없다.
그들도 힘들었겠지만 나도 매우 힘들었다. 여러 어려운 점이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유니폼,
즉 정장이었다. 특히 넥타이와 와이셔츠가 문제였다. 넥타이로 졸리는 목은 나를 예민하게 만들고,
와이셔츠의 딱딱함은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적어도 나에게 양복은 집중과 몰입보다는 긴장과 경계에
유용한 복장이다. 잠시의 외출을 뒤로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온 나는 경조사와 같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 철저히 정장을 멀리한다. 그런데 이것이 몇몇 주위 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걱정을 들었다. 하지만 나는 편한 복장을 고집한다. 물론 매우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예의도, 품격도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저는 학교에 일, 곧 공부와 교육을 하러 옵니다.
그런데 와이셔츠에 넥타이는 일을 방해합니다. 집중할 수도 몰입할 수도 없습니다.
일을 잘하기 위해선 그에 적합한 작업복이 필요합니다. 저에게 학교는 매우 치열한 일터이며,
정장은 제 작업복이 아닙니다.” 상상력이 빈곤한 탓인지 나는 정장을 한 주커버그를,
양복을 입은 페이스북을 떠올릴 수 없다. 그가 이룩한 성과는 아마도 남들에게 자신을 맞추지 않고,
남들의 시선에 괘념치 않으며,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몰입한 결과일 것이다.
그의 작업복은 후드 티, 청바지다. 전상진 님|서강대 사회학과 교수